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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한국의 관은성지 제1호 낙가산 보문사(普門寺)

여행자솔향 2013. 9. 10. 13:00
 
 
 
 한국의 관음성지 제1호 낙가산 보문사(普門寺)
 
 
 
 
보문사 일주문
 
일반 건축물의 형태는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올리는 것인데  
일주문은 기둥을 일렬로 배치하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어 일주문이라 불립니다.

일주문은 문 밖의 사바세계와 문 안의 부처님의 세계를 나누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일심(一心)의 지극한 마음으로 정진하여 성불하라는 큰 뜻이 있습니다.
 
보문사 일주문은 칸수는 한 칸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현판에 쓰여진 `낙가산 보문사'라는 글씨는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의 작품입니다
  
 
 
 
 
음용수대 앞에 있는 고기상이 예뻐서 한컷
    
 
 
담장 구멍 넘어 장독대가 인상적입니다
 
 
 
불심이 나무위에 올라 앉았네요
   
 
 
 
 
종각루
 
 
 
보문사 감로다원
 
 
 
 
 
감로다원 내부
   
 
 
사리탑
 
2005년에 조성된 사리탑은 목조 형식의 3층 석탑으로 탑신부 각 층에 11분씩 총 서른 세분의 관세음보살님이 각인되어 있고
관세음보살님 위로 각각 용머리를 배치하고 옥개받침 부분에 처마도리와 서까래를 이중으로 내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표현하여 장엄하였습니다.
   
 
 
33관음 사리탑의 뒷편을 둘러 감싸안듯 오백나한이 모셔져 있습니다.
나한이라 함은 아라한과를 증득한 존자를 말하며 열반경에 이르시기를 “아라한과(阿羅漢果)는 저 피안에 이르렀다고 이름하느니라.
아라한과는 무학(無學)의 법신(法身)이니, 계율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의 지견(知見)이니라. 이 다섯가지로 인하여 저 언덕에 이를 수 있으므로
저 언덕에 이른다함이며, 저 언덕에 이르렀으므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태어나는 일이 없고 범행이 구족하고 할 일을 이미 마치었고
다시 생사를 받지 않는다 하느니라.” 라고 아라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보문사의 오백나한 상은 오백분의 모습과 표정이 모두 달라 각각의 개성적인 모습을 자유분방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오백나한 봉안 불사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어 동참하신 분의 이름을 나한님 좌대에 새겨드리고 있습니다.
      
 
 
 
 
와불전은 천인대 위에 조성된 전각입니다.
천인대는 길이 40m, 폭 5m의 큰 바위로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그 크기가 넓어서 천명이 앉을 수 있다고 하여 ‘천인대’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와불전은 열반 당시 모습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셨습니다.
전체 신장이 10m이고, 열반대는 13m로 그 규모가 상당하다 하겠습니다.
부처님 뒤의 1m 정도의 공간을 통해 주위를 돌면서 참배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보문사의 와불 부처님은 누워 계신 모습과 손의 모양, 불의(佛衣)의 주름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 되어있고,
상호(相好) 또한 평안하여 기도를 하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평정을 갖게 해 줍니다.
운양으로 장식된 열반대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다운 조각으로 구름의 모양이 수려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보문사 석실
 
석실 안에 봉안된 세분의 삼존상과 한분의 관세음보살상, 19분의 나한상은 눈썹바위의 마애관음보살좌상과 더불어 보문사의 대표적 성보문화재입니다.
보문사가 관음성지인 동시에 나한신앙의 대표적 도량이 된 것은 바로 이 석실에 있는 나한상 때문으로 보아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석실 및 석실에 봉안된 나한상이 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높다 할 것입니다.
석굴사원의 예는 경주 석굴암, 경북 군위의 삼존석굴, 강원도 속초의 개조암 정도로 우리나라에는 몇 되지 않는 귀중한 예입니다.
일화에 따르면 창건 후 14년 뒤인 649년 신라 선덕왕 때 어부들이 고기잡이 나가다 그물에 걸려 올라온 석불상들을
이곳 동굴에 안치하였다고 하였으므로  곧 그때부터 석실이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뒤의 역사는 자세한 기록은 없고 다만 조선 후기인 1812년에 한차례 그리고 1867년에 다시 경산화상이 석굴을 보수했습니다.
 1958년 춘성선사가 석굴 내부를 좀 더 확장하며 개수하였고 최근에는 1980년 정수(靜守)스님이 내부를 다시 확장하는 한편
지금의 불단(佛壇) 뒤와 옆에 있는 석탱화를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석실은 30평 정도로 구조를 보면 내부는 천연 동굴을 확장하여 만들었고 입구에 무지개 모양을 한 3개의 아치형 홍예문(虹霓門)을 조성하였습니다.
상단에 석가모니부처님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님, 송자관음보살님 그리고 이후에 따로 조성한 관세음보살님이 계시고, 18나한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좌우에 모셔진 나한님은 빈도라발라타사 가낙가발차 가낙가발리타사 소빈타 낙거라 발타라 가리가 벌사라불다라 술박가 반탁가 라훌라 나가서나
인갈타 벌나파사 아시다 주다반탁가 가섭 빈두로 이렇게 나한전에는 총 스물 세분의 제불보살님과 나한님이 계십니다.
중단에는 석조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고, 불단 양 옆의 인등을 따라 뒤편으로 돌아가면 1980년에 조성된부처님 탱화가 있습니다.
불단 뒤에는 1982년의 불단 조성을 기념한 <보문사석굴법당연기문(普門寺石窟法堂緣起文)>과 <법화경약모게(法華經略摹揭)>가 새겨져 있습니다.
연기문은 기현(奇玄)스님의 글이고, 게는 법화경의 내용을 쓴 것으로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의 글씨입니다.
나한전은 365일 24시간 스님들의 기도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어  누구나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기도를 할 수 있는 나한도량입니다.
                   
 
 
맷돌은 옛날 절의 스님들이 취사용으로 사용하던 것으로 석실 입구 오른쪽 삼성각 올라가는 계단 옆 화단에 있습니다.
석재는 화강암이며 전체적으로 돌을 다듬은 솜씨가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조각도 정밀합니다.
둥근 모양을 한 밑부분의 주연(周緣)에는 흠이 널찍하게 파여져 있고,
맷돌질로 잘게 으스러진 곡물이 밑에 받치는 그릇에 흘러 잘 담아지도록 홈통도 알맞은 너비로 파여 있습니다.

윗돌은 얇게 조성되었으며 역시 주연에 굵직한 테를 양각하고 그 양쪽을 파 놓아 그곳에 자루를 끼워 맷돌을 돌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현재 사찰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맷돌은 웃돌, 즉 상대석만 남아 있는데 보문사 맷돌은 웃돌 뿐만 아니라 아랫돌인 하대석까지 완전히 보존되어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고 또한 크기도 지름 69cm, 두께 20cm나 되어 보통의 것보다 두 배 가량 됩니다.
한때 보문사 스님과 수도사들이 300명에 달하였다고 하니 맷돌이 사용되던 시절 보문사가 얼마나 많은 스님과 신도들로 성황을 이루었는지 짐작 할만 합니다.
 양식으로 보아 조선 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맷돌 좌우에 크기가 비슷한 돌절구가 하나씩 있는데 이 역시 맷돌과 마찬가지로 취사용으로 쓰인 듯합니다.
    
 
 
 
 
 
삼성각(三聖閣)은 나한전 석실과 극락보전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960년에 지어졌으며 최근 중수되었고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위치는 경내보다 높게 축대를 이중으로 쌓아 자리하고 있으며 돌계단으로 오르내리도록 하였습니다.
계단 옆에는 최근에 조성한 석등 2기가 보기 좋게 양쪽으로 있습니다.
  
 
 
전각의 안에는 불단은 놓여 있으나 불상 없이 가운데 칠성탱화를 중심으로 산신탱화 독성 탱화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삼성각 양쪽 내벽에 나한도가 각각 걸려있고 바깥쪽 벽 좌우에도 산신도 나한도 4폭이 그려져 있고
정면 기둥에는 오른쪽부터 `영과광대혜감명(靈過廣大慧鑑明)'·`주재공중영무방(住在空中映無方)'
`나열벽천임찰토(羅列碧天臨刹土)'주천인세수막장(周天人世壽莫長)'이라 쓴 주련(柱聯)이 각각 걸려 있습니다.
      
 
 
범종각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있는 범종각은 1975년에 지어졌으며  제작 당시 국내 최대의 범종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범종은 1975년 당시 주지인 정수(正秀)스님의 발원으로 조성되었는데  높이 215cm, 밑지름 140cm, 무게 5t이나 됩니다.
이 범종은 1975년에 고 육영수(陸英修) 여사가 화주하여 모셔진 것으로 유명세를 알렸으며 조성 당시 국내 최대 규모로 나라 안팎에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범종의 기본 형태는 국보 제36호인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동종과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을 조화시켜 도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범종각'이라는 현판 글씨는 강화가 고향인 서예가 박세림(朴世霖, 1924∼1975)의 작품입니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공양간
 
 
 
한국 33관음성지중 제1호 보문사라는 표지
  
 
 
보문사의 중심 전각인 극락보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에 내부 60평 정도의 웅장한 규모로 보문사를 찾는 사람을 반기고 있습니다.
삼존불 위로는 아름다운 닷집이 조성되어 있으며 천정의 좌우에 각 하나씩 용상(龍像)이 지나 다니고
또 다른 한 쌍의 용상이 전각의 안에서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멀리 마애불상이 모셔진 눈섭바위가 보인다.
  
 
 
 
 
 
 
 
 
상단에는 아미타부처님과 좌우 협시로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님이 모셔져 있고 중단에 신중탱화가 하단에 지장보살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또한 상단 뒤편으로 총 3,000분의 옥부처님이 모셔져 있어 법당에 장엄함을 더 하고 있습니다.
 
 
 
 
 
 
 
 
 
 
 
마애관세음보살좌상은 대웅전 옆 계단을 따라
10여분을 올라가면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에 새겨 모셔져 있습니다.  
       
 
 
관음성전 계단불사 공덕비
  
 
 
석등에 불심이 가득 올려저 있습니다.
   
 
 
용왕단

서해 바다의 탁트인 시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용왕단에서는 각자의 소중한 발원을 담아 소원지를 써서 유리병 속에 100일간 보관을 합니다.
100일이 지난 후 용왕단에 보관된 소원지를 꺼내 스님들께서 축원을 하고 소전을 하게 됩니다.
  이곳은 전망이 좋아 사진도 찍고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장소입니다.
    
 
 
 
꽤나 가파른 길이라 계단은 지그재그 식으로 놓여 있습니다.
총 419개에 달하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제법 다리에 힘도 들고 허리가 뻣뻣해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관세음보살‘을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외우면서 올라가노라면 어느새 관음보살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 입니다
 
 
 
이제 다 올라왔습니다.
   
 
 
 
 
마애관세음보살
 
 
 
오늘은 안개가 껴 흐리지만 마애관세음보살상 앞에서보면 전망이 끝내줍니다.
   
 
 
다시 보아도 극락보전의 웅장함이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