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景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을 때에도 일반 백성들로부터 궁궐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경복궁 중건시 궁성이 새단장을 하었지만 일제 강점기에 앞부분이 헐려 나가고 또 한국전쟁 때 파손되었습니다.
현재의 궁성은 그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쌓은 것이고, 일부는 본래 위치보다 안으로 들여 쌓은 상태입니다.
근정전(勤政殿)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입니다.
왕이 신하들의 조하(朝賀:조회의식)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大禮)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입니다.
정전인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층으로 된 근정전 건물은 2단의 높은 월대(月臺)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는 중요행사를 치룰 수 있는 넓은마당이 있고 그 둘레를 행각이 감싸고 있습니다
흥례문 일곽의 가운데에는 백악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물 즉, 금천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도록 한 어구가 있고, 어구의 중앙에 영제교(永濟橋)라는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어구(御溝)는 경복궁 뿐만 아니라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등에도 있으며, 고려궁궐, 중국의 궁궐, 베트남의 궁궐에도 있어
동아시아 지역의 궁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구와 영제교는 근정문에서 이루어지는 왕과 신하들의 조회 시에 신하들이 도열할 위치를 구별하는 경계이기도 했습니다.
남쪽 행각의 가운데에는 3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근정문이 있으며 그 좌우에 일화문(日華門)과 월화문(月華門)이 있고
동쪽 행각에는 융문루(隆文樓)가, 서쪽 행각에는 융무루(隆武樓)가 있습니다.
정전 영역의 입구인 근정문은 왕과 신하가 만나는 조참(朝參)행사를 하는 곳입니다.
왕은 근정문의 가운데 칸에 어좌를 설치하고 남향으로 앉고, 신하들은 흥례문 일곽에 도열하여 임금에게 예를 올렸습니다.
즉, 근정문은 단지 드나드는 출입문의 역할만을 하는 곳이 아니라 정치적인 활동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왕의 즉위나 외국 사신접대 등의 큰 행사는 근정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때 신하들은 마당에 놓여진 품계석에 따라 정해진 위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마당에는 돌을 얇고 네모나게 다듬은 박석이 깔려 있는데, 표면을 약간 거칠게 마무리하여 단조롭지 않고 빛이 반사되어도 눈이 부시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엿보입니다.
이 마당에서는 노인들을 격려하는 기로연(耆老宴)이나 과거시험도 치러졌습니다.
중심 건물인 근정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뜻이 담겨 있는 건물입니다.
큰 행사 때 사용했던 근정전은 국가와 왕을 표현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경회루(국보 제224호)
침전인 강녕전 서쪽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으로 외국사신 또는 군신간의 연회장소이며,
임금은 올바른 사람을 얻어야만 정사를 바로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경사스러운 모임이 있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경회루는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입니다.
외국사신의 접대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벌어지는 연회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경복궁 창건 당시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태종 12년(1412)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 성종 때 건물이 기울어져 다시 고쳐 지었는데 돌기둥에 용과 꽃 장식을 하여 화려하게 치장하고,
연산군 때에는 연못 안 인공섬에 만세산을 조성하고, 그 곳에 월궁을 꾸며 조화를 장식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경회루 건물은 없어졌지만,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연못은 나라에 가뭄이 들 때마다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이용되었습니다
경회루 중건에 앞서 이 건물의 공간구성을 역(易)의 원리에 기초하여 풀이한 글이 쓰여 졌는데 정학순이라는 사람이 적은 <경회루전도>입니다.
여기에는 경회루가 불을 억제하기 위하여 육육궁의 원리에 따라 지어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6은 본래 8괘에서 큰 물을 의미하는 수이며 경회루를 구성하고 있는 공간과 구조부재의 개수 등이 6궁의 원리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향원정(보물 제1761호)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옛 후원인 서현정 일대를 새롭게 조성하였는데 연못 한가운데 인공의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 정자를 지어서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는 향원정(香遠亭)이라 불렀습니다.
향원지를 건너는 다리는 “향기에 취한다”는 뜻의 취향교(醉香橋)입니다.
더위도 식힐겸 않아서 한컷....!!
향원정은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어 2층의 육모지붕을 얹은 정자입니다.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나무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취향교라 하였습니다.
취향교는 조선시대 연못에 놓인 목교로는 가장 긴 다리입니다.
지금은 남쪽에서 나무다리를 건너서 섬에 가게 되어 있지만, 원래는 취향교가 북쪽에 있어 건청궁 쪽에서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 다리를 남쪽에 다시 지은 것은 1953년도입니다.
향원지의 근원은 지하수와 열상진원샘이며, 이 물은 경회루의 연지로 흘러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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