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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팔공산 동화사(桐華寺)

여행자솔향 2014. 5. 28. 13:46

 

 

대구 팔공산 동화사(桐華寺)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의 본사이며 신라와 고려시대를 통해 대가람이었으며 금산사, 법주사와 함께 법상종 3대 사찰의 하나입니다.

 

 

 

〈동화사사적기〉에 따르면 493년(신라 소지왕 15)에 극달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부르다가

832년(흥덕왕 7)에 심지왕사가 중창했는데 사찰 주변에 오동나무꽃이 상서롭게 피어 있어 동화사라 고쳐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삼국유사〉 권4 심지계조조(心地繼祖條)에는 신라 헌덕왕의 아들이었던 심지가 갖은 고행 끝에

속리산의 영심대사(永深大師)가 진표율사로부터 받은 불골간자(佛骨簡子)를 전수받아 팔공산으로 돌아온 후 불골간자를 모실 절터를 찾기 위하여

간자를 던져 떨어진 곳에다 절을 짓고 동화사라 했다는 기록이 있어 심지를 그 개조로 보기도 합니다.

  

 

 

고려 문종 때에는 이 절에서 원천 법천사의 지선국사(智先國師)가 배출되었고

그 문하에서 속리산 승통 석규(釋窺)와 금산사 주지 혜덕왕사 소현(韶顯)을 비롯하여 1,000여 명의 승려들이 나왔습니다.

  

 

 

임진왜란으로 동화사 전체가 불타버렸으며, 1608년(광해군 1) 절을 중건할 때 화주(化主) 학인(學仁)이 미륵전을 재건했고, 1725년(영조 1)에 다시 중창했습니다.

  

 

 

그후에도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경내에는 조선 영조 때 중건된 대웅전과 극락전을 비롯하여 20여 채의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이밖에도 보물로 지정된 당간지주(보물 제254호)·금당암3층석탑(보물 제248호)·

비로암3층석탑(보물 제247호)· 비로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동화사입구마애불좌상(보물 제243호)·석조부도군 등이 있습니다.

 

 

 

 

 

종루

 

 

 

원음각

 

원음각은 절에서 의식이나 행사, 법회를 행할 때 사용하는 범종, 법고, 운판, 목어의 사물을 보관하는 전각입니다.

범종은 지옥 중생을 비롯하여 일체 중생의 해탈을 위해, 법고는 축생의 고통을 쉬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법구입니다.

목어는 수중 중생을 위해, 구름 모양을 새긴 운판은 허공 세계에 사는 중생인 날짐승의 해탈을 염원하면서 칩니다.

원음각의 목어는 부릅뜬 눈과 굳게 다문 입에서 돌출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잉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법고는 높이가 두어 길되는 큰 북으로 영남 승군을 호령하던 승군 본영이 동화사였음을 알려줍니다.

 

 

 

원음각에 걸려 있는 종

 

 

 

 

 

 

 

 

 

 

 

 

 

봉서루

 

봉서루 '봉황이 깃든 누각' 이란 뜻으로 동화사를 대표하는 누각입니다.
네모난 돌기둥을 세워 누문을 만들고, 그 위에 정면 5칸의 목조 누각을 세운 독특한 건축양식입니다.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 널찍한 자연석이 하나 놓여 있으며 이곳이 봉황의 꼬리 부분이고 누각 오른쪽 귀퉁이에 있는 둥근 돌은 봉황의 알을 상징합니다.

 

 

 

 

 

육화당

 

동화사 종무소로 사용중입니다.

  

 

 

 

 

 

 

봉서루 뒤편에는 대웅전을 향해 '영남치영아문'의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영남도총섭으로 동화사에서 승병을 지휘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현판입니다.

 

 

 

화엄당

 

 

 

법화당

 

 

 

 

동화사 대웅전

 

동화사 대웅전은 팔공산을 대표하는 법당입니다.
봉서루 누대 밑을 지나 절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대웅전입니다.

대웅전은 여러 차례 중창을 거듭하였는데 현재 건물을 조선 후기 영조 3년(1727)에서 영조 8년(1732)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웅전 축대 아래 양쪽에는 한 쌍의 괘불대와 노주가 있고, 법당으로 오르는 층계는 정면에 반원형으로 쌓아 올렸습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대웅전 내부

 

대웅전 내부 불단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좌측에 아미타불, 우측에 약사여래불을 모셨습니다.

천장에는 세 마리의 용과 여섯 마리의 봉황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봉서루

 

 

 

 

 

산신각에 오르는 돌계단

 

 

 

산신각

 

산신각은 산신모셔 놓은 당우로 한국 불교 안에 토착 신앙을 수용한 증거라 할수 있습니다.

 

 

 

산신각에는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한 산신을 조상하여 봉안하거나 탱화로 모시기도 합니다.
 

 

 

조사전

 

조사전은 동화사를 거쳐간 역대 고승의 영정을 모셔둔 곳입니다.

대웅전 서편 뒤에 위치해 있으며 18세기 건물이다.

 

 

 

조사전에는 초창주로 알려진 극달 화상과 보조 국사, 사명 대사, 세장, 두여, 의첨, 지화, 총륜,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석우 스님 등 영정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칠성각

 

칠성각 앞에 있는 심지대사 나무(오동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꽃향기를 품어 냅니다.

 

 

 

대웅전 서편 뒤 맨 위쪽에 위치해 있는 칠성각은 우리나라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전각입니다.

 

 

 

칠성은 수명장수신으로 가람 수호신의 기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칠성각 안에는 철종 8년(1857)에 그려진 삼존 형식의 칠성탱이 있습니다.

 

 

 

 

조사전 내부

 

조사전은 동화사를 거쳐간 역대 고승의 영정을 모셔둔 곳입니다.

 

 

 

조사전 내부

 

 

 

조사전 내부

 

 

 

 

 

 

 

 

 

 

 

 

 

 

 

영산전

 

대웅전 동편 뒤 담장으로 둘러싸인 별채에 위치한 영산전은 나한전, 또는 응진전이라고도 합니다. 

맛배지붕에 겹처마 형식의 건축으로 1920년 중건하였습니다.

 

 

 

법당 안에는 영산회상의 모습을 재현하여 석조 석가삼존불을 중심으로 십육나한상이 좌우로 열좌해 있습니다.

  

 

 

영산전 현판 글씨는 해사 김성근의 글씨입니다.

 

 

 

 

 

 

 

 

 

 

 

 

 

 

 

 

 

설법전

 

설법전 안에는 대중 스님들의 맡은 바 소임을 적어 놓은 용상방이 붙어 있습니다.
1990년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 불사 때 지은 설법전은 각종 법회와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는 곳입니다.

 

 

 

설법전 지하에는 공양간이 있습니다.

 

 

 

용호문(사천왕문)

 

 

 

 

 

 

 

 

 

 

 

 

 

 

 

부도전

 

 

 

부도전

 

 

 

인악당

 

인악당은 조선 시대 고승 인악 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각입니다.

인악대사비는 귀부를 거북으로 하지 않고 봉황으로 조각한 것이 다른 비석들과는 대별됩니다.

이것은 동화사가 봉황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문은 1808년에 경상도 관찰사로 있던 안동 김씨 김희순이 짓고 썼는데 와희지풍의 필체로 서법이 매우 유려합니다.

 

 

 

 

 

동화사 당간지주

 

 

 

 

 

통일대전

  

 

 

동화사 국민관광단지

 

 

 

통일대불 

  

 

 

 

 

통일대전

 

 

 

 

 

팔공산 동화사 안내도

 

 

 

동화사 매표소

 

 

 

동화사입구마애불좌상

 

동화사 입구의 오른쪽 바위면에 부조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불좌상. 보물 제243호. 높이 106cm.

얼굴은 약간 살이 찐 편으로 풍만하며 각이 진 넓은 어깨에는 통견의 법의를 걸쳤고 옷주름은 좁은 간격으로 복잡하게 늘어져 있습니다.

특히 가슴 위로 보이는 대각선의 내의와 띠매듭 등은 통일신라 말기 불상의 전형적인 법의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광배는 2줄의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표현했으며 그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두 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며 앉아 있는 자세는 완전한 결가부좌의 모습이 아니라 오른쪽 다리를 대좌 위에 비스듬히 내려놓은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대좌는 앙련과 복련이 서로 맞붙어 있으며 연화대좌 밑으로는 구름무늬가 표현되어 있어 마치 불상이 천상의 정토세계에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 마애불상은 전반적으로 얕은 저부조로 표현되어 부드럽고 섬세한 조각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나 얼굴의 굳어진 표정이나

비교적 경직된 어깨선 장식적인 광배와 대좌의 표현등은 통일신라 말기 불상에 나타나는 양식적 경향으로 대체로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초의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