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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봉황산 부석사(浮石寺)

여행자솔향 2013. 12. 11. 14:00

 

 

 

봉황산 부석사(浮石寺)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625~702)가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입니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을 향해 올라갑니다.

 

 

 

천왕문

 

 

 

 

사천왕상

 

사대천왕()·호세사천왕()이라고도 하며 욕계육천()의 최하위를 차지합니다. 

수미산 정상의 중앙부에 있는 제석천()을 섬기며, 불법()뿐 아니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호법신입니다.

  

 

 

동쪽의 지국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을 말합니다.

 

 

 

 

 

 

 

 

 

 

 

 

 

 

 

 

 

 

 

 

 

 

 

 

3층석탑(동탑)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삼층석탑의 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건실하고도 장쾌한 느낌이 듭니다.

일주문을 거쳐 천왕문을 지나면 가파른 계단, 몰아쉬는 숨을 들이키면 범종루가 눈앞에 들어옵니다.

이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었다는 동탑과 서탑이 힘들게 올라온 불자들을 나란히 반기고 서 있습니다.

탑은 지석대 위에 상·하층 기단을 쌓고 우주와 탱주를 각각 새겨 격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서탑에는 익산 왕궁리 5층탑에서 가져온 석존사리 5과가 분안되어 있다고 전해집니다.

 

 

 

 

3층 석탑(서탑)

 

이 탑은 원래 부석사 동쪽 일명사터에 있던 것을 1966년 경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석사의 경관을 흐트리지않고 잘 조화되어 있습니다.

 

 

 

부석사 종무소

 

 

 

 

 

 

범종루(梵鐘樓)

 

문의 성격을 겸한 안양루가 석축 위에 작고 날아갈 듯하게 지은 누각이라면

대석축단과 안양루 석축으로 구분되는 공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범종각은 지반에 견고하게 버티고 선 안정감 있는 건물입니다.

  

 

 

건물의 지붕은 한쪽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습니다.

팔작지붕을 한 쪽이 정면을 향하고 있고 맞배지붕이 뒤쪽을 향하고 있는데 무량수전 앞에서 바라보면 왜 목수가 지붕을 그리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부석사의 종각루는 새가 날아 갈듯이 비상하는 형상입니다.

 

 

 

 

 

 

 

 

취현암

 

취현암는 조사당 동쪽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1997년도에 복원되어 2002년까지 선원으로 활용되고 있다가 지금은 부석사 산내암자로서 쓰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사명대사의 수도처로 유명하고 부석사 경내에서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종각

 

 

 

무량수전과 안양루

 

 

 

 

 

범종루(梵鐘樓)

 

 

 

 

안양루(安養樓)

 

'안양'은 극락이므로 안양문은 극락 세계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바로 극락인 무량수전이 위치한 구조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취현암

 

 

 

 

안양루(安養樓)

 

안양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엎드려 모여 있는 경내 여러 건물들의 지붕과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아스라이 보이는 소백산맥의 산과 들이 마치 정원이라도 되듯 외부 공간은 확장되어 다가오며 부석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소백의 장관을 시문으로 남겼고 그 현판들이 누각 내부에 걸려 있습니다.

 

 

 

 

 

 

안양루(安養樓)

 

이 건물에는 위쪽과 아래쪽에 달린 편액이 서로 다릅니다.

난간 아랫부분에 걸린 편액은 '안양문'이라 되어 있고 위층 마당 쪽에는 '안양루'라고 씌어 있습니다.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2중의 기능을 부여한 것입니다.

 

 

 

 

 

 

 

 

 

 

 

부석사 3층석탑(浮石寺 三層石塔)

 

 이 탑은 이웃 절터에서 옮겨진 것으로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은 전형적인 신라시대 석탑입니다.

지대석과 하층 기단의 중석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는데 모두 8매석으로 짜였고중석 각 면에는 2개씩의 우주와 탱주가 새겨져 있습니다.

상층 기단의 중석은 각 면이 1매의 판석으로 짜였고 각 면에는 위에는 2단의 탑신 받침이 있습니다.

그 위로 탑신부가 올려져 있고 옥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1매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각층의 탑신에는 각기 우주만 있을 뿐 조각을 새기지 않았습니다.

옥개석의 받침은 각층 5단이고 낙수면의 네 모서리는 약간 반전되었습니다.

3층 옥개석의 일부가 파손되었고 그 위의 상륜부엔 현재 노반과 넓적한 복발만이 남아 있습니다.

 

 

 

 

 

 

3층 석탑

 

본래 탑은 법당 앞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부석사 삼층석탑은 무량수전 동쪽에 서있어 궁금중을 자아냅니다.

아마도 동쪽을 향해 안치된 무량수전의 아미타불 방향과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조사당(祖師堂)

 

조사당 전면 처마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선비화는

의상대사(義湘大師)꽂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란 전설이 있습니다.

 

택리지에는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한 후 도를 깨치고 인도로 떠날 때 지팡이를 꽂으면서

"지팡이에 뿌리가 내리고 잎이 날 터이니 이 나무가 죽지 않으면 나도 죽지 않은 것으로 알라"고 했다는 내용이 전합니다.

 

 

선비(禪扉)는 사찰의 문을 의미하며 선비화(禪扉花) "절꽃"이라는 뜻입니다.

  

주련의 내용은 조사당에 걸맞게 조사의 존경스런 행적을 한 마디로 표현하였는데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禪指西天爲骨髓(선지서천위골수)-선사의 뜻은 서천의 골수가 되었고

                                       敎說東土作笙篁(교설동토작생황)-가르침과 말씀은 우리나라의 생황이 되었네

  

 

 

조사당(祖師堂)

 

조사당은 무량수전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산 중턱에 있습니다.

지붕은 맞배 형식으로 간단해 보이지만 넉넉하게 뻗어 나와 결코 작은 건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1916년의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장여 위의 묵서에 의하면 조사당은 고려 우왕 3년(1377)에 원응 국사가 재건한 것입니다.

조선 성종 21년(1490)에 중수하고 성종 24년에 단청하였으며 선조 6년(1573)에는 서까래를 수리하였습니다.  

  

 

 

 

선비화(禪扉花)

 

                 擢玉森森依寺門(탁옥삼삼의사문)-옥인듯 빼어난 가지 촘촘히 절 문에 사는데

                      言卓錫化靈根(승언탁석화령근)-스님 말씀, 의상 대사 지팡이가 뿌리 내렸다고,

                      杖頭自有曺溪水(장두자유조계수)-지팡이 머리에 조계수가 절로 있어

                      不借乾坤雨露恩(불차건곤우로은)-천지가 내려 주는 비, 이슬의 은혜 빌리지 않네,

 

이황(李滉)

 

 

 

 

 

 

 

 

 

 

 

 

 

 

 

응진전(應眞殿)

 

응진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전각입니다. 
    

 

 

 

자인당(慈忍堂)

 

자인당은 선방의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입니다.

부석사에서 동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폐사지에서 옮겨 온 석불을 이곳에 이안했습니다.
공포가 건물 규모에 비하여 너무 크고 측벽에 여러 가지 형태의 옛 부재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후반경에 해체 부재를 재사용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자인당 실내 

 

 자인당 실내에는 석조 삼존여래 좌상을 모셨는데 가운데는 석가여래이고 좌우는 비로자나불(보물 제220호)입니다.

 

 

 

 

 

 

응진전 실내

 

실네에 석고로 만든 석가삼존불과 고졸한 십육나한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단하각(丹霞閣)

 

규모도 작고 기단도 없이 초라하여 마치 작은 사찰의 산신각 같은 느낌을 줍니다.

선묘각은 무량수전 북서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의상 조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된 인물인 선묘를 모신 건물입니다.

   

 

 

 

단하각 내부

 

현재 건물 내부에는 손에 쥐를 들고 있는 작은 나한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부석사 3층석탑(浮石寺 三層石塔)

 

 

 

 

 

선묘각

 

 

 

 

 

선묘각

 

 

 

선묘각

 

 

 

선묘각

 

 

 

 

 

무량수전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입니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리는데 '무량수'라는 말은 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안양루(安養樓)

 

안양루는 무량수전 앞마당 끝에 놓인 누각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무량수전과 함께 이 영역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무량수전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축물중 하나입니다.
역사적으로 인정되기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있지만 건물 규모나 구조 방식,

법식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무량수전에 비하여 다소 떨어집니다.

 

 

 

무량수전은 고대 불전 형식과 구조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중요한 건물입니다.

   

 

 

무량수전의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필체라고 하는데 무량수 라는 말은 수명이 영원하다... 또는 죽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삼성각

 

칠성, 독성, 산신 세 분을 한 곳에 모신 전각으로 무량수전 서쪽 석축 아래에 있습니다.

삼성각은 우리나라 재래의 수(壽), 복(福), 재(財)의 삼신 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현재의 삼성각은 원래 축화전(祝花殿)이라 불렀는데 영조 때 대비의 원당으로 지은 건물이라 합니다.

 

 

 

1979년의 부수 때까지는 원각전(圓角殿)이라 하였고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모셨었습니다.

 

 

 

 

 

주지 스님이 머무는곳입니다.

 

 

 

종각

 

 

 

 

 

공양간

 

 

 

 

 

 

 

 

 

서부도

 

 

 

 

 

공양간

 

 

 

 

 

 

 

 

 

 

 

 

 

 

 

 

 

 

 

 

 

 

 

 

 

 

 

 

 

 

 

 

 

 

 

 

 

지장전

 

 

 

지장전 실내

 

 

 

 

 

 

 

 

 

 

 

부석사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