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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고택

여행자솔향 2012. 10. 9. 15:23
 
 
 

세계문화유산에 등제된 안동 하회마을

 

 

 

하회마을(河回)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있는 민속마을입니다.

 

 

 

양진당 (養眞堂)

하회마을에 있는 겸암 류운룡(1539~1601)의 집으로 풍산 류씨 대종택이다

 

 

 

양진당은 겸암 유운룡(1539∼1601)의 집으로 매우 오래된 풍산 유씨 종가이다.

입암 유중영(1515∼1573)의 호를 빌어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유중영은 유운룡의 아버지이다.

양진당은 유운룡의 6대손 유영(1687∼1761)의 어릴 때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규모는 앞면 4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오른쪽 3칸은 대청, 왼쪽 1칸은 온돌방으로 바깥 주위에 툇마루와 난간을 둘러

마치 누(樓)집과 같은 인상을 주며 대청에는 문을 달아 3칸 모두 열 수 있게 하였다.

 

 

 

건물 안쪽 천장은 지붕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고 한석봉이 쓴 ‘양진당(養眞堂)’이란 당호와 함께 여러 현판들이 걸려 있다.

건물 안쪽 일부 재료를 만든 수법이 뛰어나고, 일반 주택으로는 제법 규모가 큰 조선시대 별당건축물 중 하나이다.

 

 

 

북촌댁

조선시대의 가옥으로 하회마을 북촌 중심부의 넓은 터에 동향으로 자리잡았다.

철종 13년(1862)에 경상도 도사를 지낸 류도성(柳道性)이 건립하였고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다.

원래 99칸 집으로 전해지지만 현재는 54칸만이 남아있다.

대문채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와 안채가 이어진 완전한 ㅁ자형의 정침과 우측으로 별당채와 사당채가 있는 큰 집으로 전형적인 양반가옥이다.

기단이 매우 높게 건축되어 전체적으로 높고 웅장한 느낌을 주는 집이다.

류운룡의 종택인 양진당(보물 제306호)과 함께 북촌을 대표하는 전통가옥이다.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동족마을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민속·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촌이다.

그 중 북촌택은 양진당(보물 제306호)과 함께 하회 북촌을 대표하는 규모가 큰 집으로 북촌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경상도 도사를 지낸 유도성이 철종 13년(1862)에 지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한 것이다.

 

크게 안채, 사랑채, 별당채, 대문간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문을 들어서 앞에 보이는 건물이 'ㅁ'자형 몸채이며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별당채이다.

사당은 별당채를 지나 안쪽에 별도로 담장을 둘러 지어 놓았다.

 

 

 

앞쪽이 사랑채로 오른쪽에 큰 사랑, 왼쪽에 작은 사랑을 두었으며 각 끝칸에 대청을 만들었다.

큰 사랑에는 ‘화경당(和敬堂)’이라고 쓴 액자가 걸려 있는데 한석봉의 글씨라고 하며, 뒤쪽 방은 서재이다.

작은 사랑 대청 뒤편으로 1칸 방이 부엌 아랫방과 연이어 있다.

안채는 높은 축대 위에 세웠으며 기둥도 매우 높이 올렸다.

 

 

 

 

안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과 안방, 오른쪽에 아들과 며느리의 방으로 쓰는 건너방(윗상방)이 있다.

안방은 '田'자 구조로 함경도 지방의 형식을 띠고 있고 부엌은 3칸이 넘는 크기로 2칸의 아랫방과 연이어 있다.

건너방 앞에 툇마루와 연결된 방(아랫상방)은 살림을 물린 노부모가 사용하는 방이다.

 

 

 

화경당(和敬堂)

 

 

 

 

화경당

 

 

 

화경당 앞에서...

 

 

 

 

 

 

 

 

 

지산고택 (志山故宅)

 

 

 

 

 

 

 

 

 

 

 

 

 

 

 

 

 

 

염행당(念行堂) 

 염행당은 류치목(柳致睦, 1771~1836)이 분가하여 지은 집이다.

 

 

 

 

처음에는 단출하게 지었는데

그의 증송자인 류영우(柳永佑, 1850~1934)가

1905년에 크게 확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충효당과 더불어 하회의 남쪽을 대표하는  남촌댁(당호 염행당)은

정종21년 지은 99칸의 건물로서 하회마을 남쪽 사대부의 가옥을 대표하였으나,

1954년 화재로 안채와 사랑채가 소실되고, 현재는 대문간채와 별당, 사당만 남아 있다.

많은 도서와 진귀한 골동품들이 그 때에 소실되었다고 한다.

 

 

 

건물의 특징은 문간채는 솟을 대문을 두었으며,

안채와 사랑채의 구들연기를 하나의 큰 굴뚝으로 뽑아낼 정도로 사대부집 가운데에서도 훌륭한 건물이었다.

별당채는 별도로 일곽을 둘러 조성하여 후원 별당의 아취가 느껴진다.

 

 

 

최근에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꼭 필요한 건물로 평가되어 복원되었다.

 

 

 

벽체의 화방담은 화경당(북촌)의 화방담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가식이나 과장 없이 천연덕스럽게 장식하였는데,

기와쪽을 이용하여 석쇠 무늬를 바탕으로 희(囍)자와 수(壽)자를 만들었다.  

 

 

 

 

 

 

 

 

 

 

 

 

 

 

 

 

 

 

 

 

 

 

 

 

 

 

 

 

 

 

담연재(澹然齋)는

´맑고 편안한 마음으로 학문을 익히면 지혜와 뜻이 널리 퍼진다´라는

뜻을 가진 탤런트 류시원씨의 본가다.

 

 

대문옆 담장에 담연재라고 새겨져 있는 것에 있습니다.  

조각가 김영중이  돌로 만든 것이랍니다

 

 가난한 선비가 급하게 밥값이 필요할 때 이곳에 손을 넣으면

얼마간의 돈을 끄집어 낼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을 많이 하여 손이 커진 머슴들의 손으로는

끄집어 낼 수 없도록 작은 구멍을 내었답니다.

 

 

 

 

 

 

 

 

 

그밖에 여러 고택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