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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단테 / Alighieri Dante

여행자솔향 2012. 6. 30. 14:05
 
 
 
단테 (Alighieri Dante)
 
 
 

 베니스에서 피렌체로 가는 버스안에서 이태리의 농촌 풍경을 즐겨봅니다.

 

 

 

북부 지방의 전형적인 농촌 풍경입니다.

 

 

 

 

 

 

 

 

 

 

 

 

 

 

 

 

 

 

 

 

 

도심의 골목길은 대형차들이 통제되기 때문에 이처럼 걸어서 이동합니다.

 

 

 

단테의 집앞에서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단테는 1290년대에 피렌체와 피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당파 싸움에 가담하였으며,

1230년에는 피렌체 시협의회 회장(Priorat)직을 맞아 1233년까지 적극적으로 정치무내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단테는 피렌체가 로마 교황의 세력에서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로마교황을 옹호하는 결피당을 지지하여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받드는 기밸리니당과 적대관계에 있었습니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1275년에서 194년에 걸쳐 약 20여년간 신학을 교육 받았으며 특히 브르네토 라티니 밑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신곡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단테는 중세의 스콜라 철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스콜라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또한 배운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단테가 살던집 앞마당에 새겨진 단테의 얼굴.

 

 

 

그냥 보면 잘안보여 가이드가 마시던 물을 뿌려며 설명하니 확연이 드러납니다.

 

 

 

 궬피당의 승리로 두 당의 전쟁은 끝이 났지만, 궬피당이 흑당과 백당으로 나뉘어 다시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흑당은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야심을 이용하여 백당을 패배시키게 되고 단테를 추방했으며 이 때부터 단테의 길고 긴 망명생활이 사작됩니다.

 

 

 단테는 백당의 남은 사람들과 함께 흑당을 무찔러 피렌체를 탈환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하게 되고, 단테만이 백당의 일원으로 남게됩니다.

단테에게 고국으로부터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면 사면을 내려주겠다는 조건부의 사면령이 내려졌지만,

그것이야 말로 자신에겐 더할 수 없는 치욕이라 생각하고 응하지 않았고 결국 흑당은 단테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궐석 재판을 열었답니다.

    

 

 

단테는 라벤나로 돌아가 귀도 노벨로(Guido Novello)의 비호를 받으며 그 곳에서 말라리아로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피렌체는 라벨르로부터 단테의 시신을 돌려줄것을 요구하며 싼타 크로체성당에 묘지를 만드어 놓았으나 아직도 돌려받지 못해 빈 묘지랍니다.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시인, 서(西)유럽 문학의 거장1265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나 ~ 1321 이탈리아 라벤나에서 사망했습니다.

 

 

 

 

 

 

 

 

 

 

 

 

 

침략이 잦았던때 난을 피하기 좋게 높은곳에 집을 짓고 살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