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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칠갑산 장곡사(長谷寺)

여행자솔향 2014. 4. 2. 20:48

 

 

칠갑산 장곡사(長谷寺)

 

 

 

대한불교조계종 제 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서 사지(寺誌)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850(문성왕 12)에 보조선사(普照禪師)가 창건한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습니다. 

   

 

 

이 절은 약간 경사진 땅 위에 2개의 대웅전이 있는 특이한 가람배치로 되어 있는데, 아래쪽에는 운학루(雲鶴樓)ㆍ하대웅전(下大雄殿:보물 제 181호)

요사(療舍)ㆍ 주지실이 있고, 여기에서 돌계단을 50m 정도 올라가면 위쪽으로 상대웅전(보물 제 162호)과 응진전(應眞殿)이 있습니다. 

     

 

   

상대웅전 안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철조약사불좌상부석조대좌(국보 제 58호)와 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보물 제 174호)가

나란히 봉안되어 있고, 하대웅전에는 고려시대의 금동약사불좌상(보물 제 33호)이 있습니다.

  

 

 

장곡사는 칠갑산에 위치해 있습니다.

칠갑산은 칠원성군의 칠과 육십갑자의 갑자를 따서 칠갑이라 명명했다고 합니다.

 

 

 

칠갑산은 백제시대에는 금강산이라 이름할 정도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합니다.

 

 

 

이러한 칠갑산에 계단식으로 법당을 배치한 장곡사는 여느 절과는 다르게 대웅전이 두개입니다.

 

 

 

 

 

 

 

 

 

장곡사에는 두 대웅전이 있고 탑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만,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상대웅전은 천상세계를 나타내고, 하대웅전은 사바세계를 나타낸다고도 합니다.

 

 

 

하대웅전에는 석가여래불상이 봉안되어 있지 않고 약사여래불상이 봉안되어 있어서, 사바세계의 중생들의 병을 치유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상대웅전에도 석가여래불상이 봉안되어 있지 않고 비로자나불상이 봉안되어 있고, 좌협시로 약사여래, 우협시로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는 것도 큰 특징입니다.

본래 대웅전은 주불이 석가여래불이고, 좌협시가 문수보살, 우협시가 보현보살입니다.

 

 

 

 

 

장곡사 범종루

 

 

 

 

왼쪽의 장곡사 큰 북

 오랜 옛날 장곡사에 있던 한 승려가 국난을 극복하고 중생을 계도하는 뜻에서 코끼리 가죽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원래는 호국과 중생을 계도하기 위해 독경할 때 사용하던 북으로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실치 않고 지금 큰 북은 찢어진 상태로 보관되고 있습니다다.

 

오른쪽의 장곡사 통나무그릇(구유)  

이 통나무그릇은 오래전 장곡사 승려들이 밥통 대신 사용하던 생활도구로 전해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는 사찰 유물로 잘 보존만 하고 있을 뿐이며 규격은 길이 7미터, 폭 1미터, 두께 10Cm입니다.

 

 

 

 

 

설선당 부억 안에 있는 조왕신입니다.

조왕신은 부엌을 관장하는 신인데 불교에서 받아 들였다고 합니다.

 정통 불교에서는 무속을 받아 들이는 것이 신기하지만  밥하는 주방에 걸어 놓은것도 재미있습니다.

 

 

 

 

 

설선당(說禪堂)

 

 

 

하 대웅전 (下 大雄殿)

 

 

 

 

 

 

 

지장전(地藏殿)

  

 

 

 

 

 

 

 

 

스님들의 거처인 설선당으로 장곡사 현판은 전 국무총리 김종필의 글씨입니다.

 

 

 

 

 

 

 

 

 

 

 

 

 

 

 

 

 

 

 

상 대웅전 (上 大雄殿)

 

보통 대웅전은 절에 하나이며 중앙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십니다.

약사여래를 모시면 약사전이라고 하며,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곳을 대적광전이라고 명칭합니다.

상대웅전은 고려말이나 조선초기 건축양식을 보이고 하대웅전은 조선중기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건축된 시대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 여기에는 두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한가지는 본래 두개의 사찰이 따로 있었을 가능성입니다.

또 한가지는 임진왜란등 전란을 거치면서 사찰이 파괴되면서 새로 건물을 짓고 기존의 건물은 나중에 보수하면서 두개의 대웅전이 생겼을 가능성입니다.

그렇다면 왜 약사전이나 대적광전이 아닌 그냥 대웅전이라고 현판을 붙여 놓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것입니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억불정책때문에 불교문화가 상당히 쇠퇴하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특히 임진왜란, 정묘호란등 전쟁을 거치면서 백성들이 살기 어려워지고 질병이 많이 생기면서 약사여래 신앙이 성행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심지어 석가모니불상에 약사발을 올려놓고 약사여래로 모시는 일도 생기게 됩니다.

정말 소박한 민중들의 신앙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불교문화에 대한 엄격함도 퇴색해 버리게 되어 대웅전에 석가모니부처님이 아닌 약사여래나 비로자나불도 모시게 된것입니다.

그 반대로 약사여래나 비로자나불이 있는 곳을 그냥 대웅전이라고 붙였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여러 전란을 거치며 불교문화가 쇠퇴하며 문화적 오류에서 생긴 현상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상 대웅전 안의 모습입니다.

왼쪽부터 철조아미타불좌상, 철조비로사나불좌상, 철조약사여래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상 대웅전은 특이하게 바닥을 전돌로 깔았는데 이중에는 신라시대의 전돌(연잎8개) 있습니다.

 

 

 

 

 

 

 

철조약사여래좌상

 

 

 

철조비로사나불좌상

 

 

 

 철조아미타불좌상

   

 

 

응진전(應眞殿)

  

 

 

응진전 내부 모습으로 나한상과 석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삼성각(三聖閣)

  

 

 

삼성각(三聖閣)

 

 

 

 

 

 

 

 

 

상 대웅전

 

 

 

 

 

 

 

 

 

 

 

 

 

 

 

장곡사 운학루(雲鶴樓) 

 

운학루는 폐사된 운곡사에서 옮겨와 지었다고 합니다.

 

 

 

장곡사 범종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