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산행/사찰 암자

[천안] 태화산 광덕사(廣德寺)

여행자솔향 2014. 3. 21. 10:00
 

 

 

태화산 광덕사(廣德寺)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입니다.

  

 

 

652년(진덕여왕 6) 자장(慈藏)이 창건하였고, 832년(흥덕왕 7) 진산(珍山)이 중수하였으며 1344년(충혜왕 복위 5) 중창하였습니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충청도와 경기도 지방에서 가장 큰 절 중의 하나로서, 사찰소유 토지가 광덕면 전체에 이르렀고, 89개에 달하는 부속암자가 있었습니다.
 

 

 

또한, 누각이 8개, 종각이 9개, 만장각(萬藏閣)이 80칸, 천불전(千佛殿)도 3층으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으로 타버린 뒤 1598년(선조 31) 희묵(熙默)이 중수하였고,

1665년(현종 6) 석심(釋心)이 불상과 종을 개수하였으며, 1679년(숙종 6) 상민(尙敏)이 중창하였습니다.
대웅전과 천불전만이 중건된 채 1980년까지 사세가 계속 기울었습니다.

 

 

 

1981년에 대웅전과 종각 등을 신축하고 천불전도 증축하였으며, 그 앞으로 석교도 가설하였습니다.
1996년 철웅(哲雄)이 15년 동안의 불사를 마무리하여 대웅전·천불전·명부전·범종각·적선당·보화루 등을 중창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천불전은 1998년에 소실되었습니다.

 

 

 

석불입상

 

 

 

사찰 앞에는 아담한 광덕사 다원이 있습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47호로 지정된 천불전 안에는 천불이 그려진 후불탱화(後佛幀畵) 3점이 있어, 전체 3,000불의 그림이 장엄한 기운을 풍기고 있습니다.

이 탱화는 가로 28자, 세로 35자의 거대한 규모입니다.

  

 

 

이 절에는 진산이 832년(흥덕왕 7)에 가져왔다는 불치(佛齒) 1매와 사리 10과, 승가리(僧伽梨) 1령(領)과 불좌(佛座) 1병 등을 비롯하여,
금·은·흑자로 된 『법화경』과 금자사적기(金字寺蹟記) 및 세조어첩(世祖御帖) 등의 귀중한 문화재가 있습니다.
 

 

 

고려 말기의 사경(寫經)으로 추측되는 금은자법화경(金銀字法華經)은 비록 낙질본(落帙本: 한 질을 이루고 있는 책에서 권책 수가 빠진 것)이기는 하지만

여러 권이 남아 있는데 그 중 6책이 보물 제390호로 지정되어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보물 제269호와 제270호로 지정된 마곡사의 금은자법화경도 원래는 이 절에 소장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금자사적기는 다른 데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조선시대의 작품이며,
세조어첩은 1457년(세조 3) 세조가 온양 온천에 왔다가 이 절의 부처님 치아와 사리를 친견한 뒤,
광덕사와 개천사(開天寺)의 부역을 면제시켜주고, 위전(位田: 위토전)을 사급(賜給)한다는 교지를 친서한 것입니다.
 

 

 

이 절에서 동북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는 진산의 부도 등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부도 4기가 있으며,
천불전 우측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0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광덕사 삼층석탑 (廣德寺三層石塔)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의 석탑입니다.
위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고, 특히 탑신의 1층 몸돌에는 문모양 안에 자물쇠를 새겨 놓았습니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윗면에는 급한 경사가 흐르고, 네 귀퉁이는 위로 치켜 올라갔습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 : 엎어놓은 그릇 모양)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아래층 기단의 기둥 장식이 생략되고,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드는 점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웠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광덕사 대웅전

 

대웅전은 1981년에 증축되었고 1983년 광덕사를 해체 복원할 때

기존의 건물보다 크게 건립되었는데 구조는 다포계 맞배지붕으로 창호는 격자무뉘입니다.

안에는 석가여래상·약사여래상·아미타여래불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조선 후기의 것으로 보입니다.

 

화기()에 ‘건륭 6년()’이라고 되어 있으며

화원()은 수당()과 붕우() 사혜인찰()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건륭 6년은 1741년(영조 17)입니다. 

1983년 해체 복원시 기존의 주춧돌·목재 등을 방치하여 현재 건물은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부족하답니다.

   

 

 

 

 

 

 

 

 

 

 

 

 

 

 

 

 

 

 

 

 

 

 

 

 

 

 

 

 

 

 

 

 

청상당 부도는 청상스님의 사리를 모신 부도입니다.

스님은 조선 선조 36년(1603)에 출생하여 현종 12년(1671) 은적사에서 입적하였는데 그 제자들이 스님의 사리를 얻어와 이곳 광덕사에 부도를 세웠다고 합니다.

 

형태는 전체가 거의 8각을 이루고 있으며, 기단부(基壇部)와 탑신부(塔身部) 그리고 머리장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기단부는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뉘어 있고 연꽃무늬가 펼쳐진 아래받침돌 위에 6각의 가운데받침돌이 놓여 있는데, 각 면에 난간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탑신은 둥근 모습이며, 그 위로 6각의 지붕돌이 놓여 있고 꼭대기에는 화려한 머리장식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광덕사『사적기』에 따르면, 조선 현종 13년(1672) 경에 이 부도를 세웠다 합니다.

   

 

 

적조당 부도는 전체가 8각을 이루어 기단부와 탑신부 그리고 머리장식을 갖추고 있고 기단부는 아래와 윗받침돌에 연꽃무늬를 조각하였습니다.

그 사이 8각 가운데받침돌은 각 면마다 난간을 새겼고 한쪽면에 ‘적조당’이라는 글씨를 새겨 사리의 주인공을 밝히고 있습니다.

탑신의 몸돌은 둥글고, 6각 지붕돌 꼭대기에는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과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놓여 소박한 머리장식을 하고 있습니다. 

우암당 부도의 기단부는 둥근 아래받침돌 위로 가운데받침 ·윗받침돌이 놓여 있는데 무늬는 두지 않고, 다만 ‘우암당’이라 새긴 글씨만 있을 뿐입니다.

탑신은 타원형의 몸돌과 6각 지붕돌이 있고 그 위로 둥근 머리장식이 솟아 있습니다. 

무명 부도는 연꽃무늬를 새긴 아래받침돌 위에 8각의 가운데받침돌을 올리고 세 줄의 연꽃잎을 새긴 윗받침돌을 얹어 기단을 마련하였습니다.

가운데받침돌은 8면마다 신장상(神將像: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을 1구씩 돋을새김 하였는데, 그 수법이 대담하고 우수합니다.

탑신은 종모양을 하고 있어서 둥글고 길쭉하며, 꼭대기에는 보주를 얹어 머리장식을 하고 있습니다. 

광덕사『사적기』의 기록이나, 전체적인 형태, 둥근 탑신의 모습 등으로 보아 모두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이 절 일대에는 호도나무가 많기로 유명한데, 아래 사진에 보이는 큰 호도나무는 700여 년 전 유청신(柳淸臣)이 중국에서 처음 들여와 심은 것이라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