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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예산 충의사(忠義祠)

여행자솔향 2014. 1. 4. 15:37
 

 

 

 

예산 충의사(忠義祠)

 

 

 

 

매헌 윤봉길의사의 숭고한 유업을 선양하며 살신 성인하신 그 위대한 민족정기를 내외에 고양하기 위하여 충의사(忠義祠) 설립하였습니다

 

 

 

1965년 상해의거 33주년, 6월29일에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기념사업회 설립하기로 논의 하였습니다. 

  

 

 

그해 12월19일(33주기 추도식)에 서울 조계사에서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를 발족하였습니다.

 

 

 

초대회장 김용태, 부회장 김삼, 안대순을 선임하였고, 1966년 상해의거 34주년 4월29일에 윤봉길의사 기념제전을 거행하였습니다.

 

 

 

무슨 나무인지 크고 높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울 YMCA 강당에서는 이상은, 홍이섭, 조일문 선생을 모셔서 윤봉길 의사 기념제전 강연회를 개최하였습니다.

 

 

 

12월19일 대성빌딩에서 제34기 추도식과 기념사업회 제1회 총회를 개최함으로서

명실상부한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가 살신 성인하신 윤의사의 나라사랑 겨레사랑 정신을 이어받아 애국심 고취 및 선양사업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량리에서

파평윤씨의 부친 윤황(尹士黃)공과 경주김씨 모친 김원상(金元祥)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덕산보통학교를 자퇴한 뒤 오치서숙에서 수학하고,19세때인 1926년부터 고향에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했습니다.

 

 

 

20세때에는 각곡독서회를 조직하고 농민독본을 편찬했으며 22세 때에는

월진회(月進會)와 수암체육회를 조직하여 농촌운동 민족운동을 더욱 정열적으로 전개 하였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23세 때인 1930년 3월6일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 이라는 글을 써놓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청도를 거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에 도착하였습니다.

 

 

 

매헌 윤봉길 의사 영정

 

 

 

일본군이 1932년 1월 28일 상해를 침공하여 점령한 후, 4월 29일 천장절 겸 상해 점령 전승경축 기념식을 홍구 공원에서 거행하게 되어

상해점령 일본군 군 정 수뇌들이 여기에 모이게 되자, 윤의사는 백범 김구 선생이 지휘하는 한인 애국단에 가입하여 이에 특공작전을 감행할 것을 자원하였습니다.

 

 

 

윤의사는 단신으로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상해 점령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등 군 정 수뇌들 7명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의 전의를 상실케 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윤의사는 현장에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5월25일

현지의 군법재판 단심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에 일본으로 이송되어 그해 12월19일 25세를 일기로 순국하였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혈 투쟁은 다음과 같이 큰 역사적 의의를 가진 독립운동이였습니다.

 

첫째, 상해를 침략하여 점령한 일본 침략군 사령부의 이동체를 모두 섬멸함으로써 정치적 군사적으로 일제에게 매우 큰 타격을 준 성과를 내었습니다.

중국군 총사령관 장개석은 "중국의 백만 대병도 불가능한 거사를 한국용사가 단행하였다"고 윤의사의 의거를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둘째, 국제도시 상해를 점령한 일본군의 동태를 전세계가 주시하는 속에서 일본침략군 총사령관 등

그 사령부의 이동체를 모두 섬멸한 것은 전세계를 놀라게 하고, 한국 민족의 불굴의 독립정신과 치열한 독립운동을 전세계에 널리 알리는 큰 성과를 내었습니다.

 

 

 

셋째, 윤의사의 의열투쟁의 성공은 만보산 사건으로 붕괴된

한 중 양 민족의 연대를 다시 회복케 하고 강화하여, 중국에서의 한국 민족독립운동을 가능케 하는 여건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중국군 2개군단이 1개월간 막대한 희생을 내며 치열한 항쟁을 벌이고도 패배하여

상해를 빼앗기고 치욕과 울분에 떨고 있던 중국인들은 윤의사의 의거에 일제히 환호하고 한국인에게 무한히 감사해 하면서

만보산 사건으로 인한 악감정을 하루 아침에 씻고 도리어 감사와 협조로 급반전되어 독립운동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해 주었습니다.

 

 

 

넷째, 윤의사의 의열투쟁의 성공은 국내외에 한국 민족의 독립정신을 더욱 크게 일깨워 주고

전반적으로 독립운동을 크게 고취하여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의거는 한국 민족독립운동사에 영원불멸의 빛나는 공훈을 남기고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입니다.

 

 

 

1. 뜻을 세우다 - 일본글은 가짜다

힘으로 우리나라의 덥쳐 국모를 살해하고 민족정기인 동학을 말살하고 국왕을 몰아내고 나라를 뺏어 우리의 목숨과 재묵을 업신여겨 인륜을 저버렸습니다.
이런 자들의 글을 배워 무엇하나?

 

 

 

 

3. 미래를 현재의 토대위에서 준비하자

우리는 울긋불긋 단풍잎을 꽃으로 알면 우리는 망할 것입니다. 시절은 봄철이 아니요 만물을 죽이는 가을철입니다.

우리는 삼동을 살아갈 양식도 많이 준비하여야 하고 의복도 많이 준비하여야 격렬한 추위를 당할지라도 겁내지 않을 것입니다.

 

 

 

4. 생명 창고는 농민의 몫이다

농민은 세상인류의 생명창고를 그손에 잡고 있습니다.

우리조선이 돌연히 상공업나라로 변하여 하루 아침에 농업은 그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못할 생명 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은 사실입니다.

 

 

 

5. 사람은 자유의 세상을 찾는다

힘으로 우리나라의 덥쳐 국모를 살해하고 민족정기인 동학을 말살하고 국왕을몰아내고 나라를 뺏어 우리의 목숨과 재묵을 업신여겨 인륜을 저버렸습니다.
이런 자들의 글을 배워 무엇하나? 

  

 

 

6. 큰사랑에 눈을 뜨자.

우리 청년시대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 보다 일충 강의한 사랑이 있는 것을 각오 하였습니다.

나의 우로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 라도 이길을 떠나 간다는 결심이었습니다.

  

 

 

7.사람은 왜 사는냐?

이 세상을 위하여 산다. 이상이란 무엇이냐? 목적의 성공이다. 보라 풀은 꽃이 피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인 나도 이상의 꽃이 피고 목적의 열매가 맺기를 자신하였습니다. 이는 의거를 뜻하며 준비된 의사로써 변신입니다

 

 

 

 

 

 

 

 

 

 

 

 

 

 

 

 

 

 

 

 

 

 

 

 

 

매헌 윤봉길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윤봉길의사의 업적과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의 높은 뜻을 기리고, 계승 발전시키며,

선양하기 위하여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가 주관하여 국민들의 성금으로 서울 양재 시민의숲 안에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1988년 12월 1일에 준공된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은

 대지 1,996평에 건평 743평,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서 윤의사의 유품과 생애사진,훈장 그리고 항일독립운동 관련사진 등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1992년 4월29일에는 상해의거 제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청동으로 된 높이 9.2m,윤봉길의사 동상이 건립되었고,

제61주년 기념사업으로 1996년 4월8일에는 윤의사가 사랑한 겨레와 인류의 자유, 평등, 평화를 위하여 오늘도 내일도 님의 뜻을 현창(顯彰)하고 숭모하는 것입니다. 
  

 

 

 

 

일생을 아름답게 살고 값있게 죽는 것을 찾는 이는 모름지기 여기에 와서 매헌 윤봉길의사의 삶에서 배우라. 는 뜻으로

오석(烏石)으로된 높이 2.14m, 서석(誓石)을 세워 천추에 전하기 위해, 천추의열 윤봉길의사 숭모비가 기념관 경내에 건립되었습니다.

 

 

 

 

 

충의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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