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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팔공산 북지장사(北地藏寺)

여행자솔향 2014. 7. 25. 02:28
 

 

 

팔공산 북지장사(北地藏寺)

 

 

 

북지장사(北地藏寺)는 동구 도학동에 위치한 고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末寺)입니다.

 

 

 

북지장사는 작고 아담한 천년 사찰입니다.

 

 

 

북지장사가 위치한 팔공산은 신라 때 오악신앙의 중심지로 중악.부악.영악으로 불리워져 왔습니다.

 

 

 

북지장사의 해우소는 특이하게 남여 화장실의 명패를 선남선녀라 짓고 입구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고 들어갑니다.

 

 

 

대구의 팔공산은 최고봉을 비로봉이라 이름 짓고

그 좌우 봉우리를 염불봉.삼성봉이라 하여 팔공산 전체를 삼존의 부처로 생각하고 산 곳곳에 절을지어 불국토를 이루게 했습니다.

북지장사 역시 이러한 염원 속에서 이루어진 사찰의 하나입니다.
 

 

 

북지장사는 신라 소지왕 7년(485)에 극달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절로 주변에 고려시대 이전의 유물인 건물지, 기단, 석탑 등이 있습니다
 

 

 

현재의 대웅전 건물은 지장전으로 사용하던 것인데 원래의 대웅전이 불에 타버려 대웅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대웅전 건립연대는 조선 인조 원년(1623)으로 정면은 1칸이며 측면에는 퇴칸을 달았습니다.

공포는 다포 계양식의 내. 외4출목이며 조선시대 중기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북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石造地藏菩薩坐像)
 

북지장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은 머리는 민머리(素髮)이며

왼손은 가슴 앞까지 들어올려 보주를 얹고 있고, 오른손은 촉지인 형태로 내려 놓은 전형적인 지장보살의 모습입다.

화강암으로 된 북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은 대웅전 뒷쪽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인데,

근대에 폭우로 인하여 발견된 것이다. 대웅전으로 옮겨 놓을 때부터 대좌 및 광배석 등은 없었다고 전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땅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인지 파손된 부분이 거의 없고 색깔도 순백에 가까우며 조각상태 또한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얼굴은 계란형인데 초승달처럼 표현된 눈썹의 선은 아래로 그대로 이어져 코와 연결되었으며 눈은 반개(半開)하였고 입은 작게 표현되었습니다.

귀가 크며 전체적으로 온화한 표정을 하고 있다. 짧은 목에는 삼도가 있고 통견의 법의는 두껍게 표현되었으며 법의의 옷주름은 가늘고 약하게 조각되었습니다.

가슴에는 내의의 선이 보이고 상체는 당당한 편입니다.

결가부좌한 하체는 양무릎이 넓고 높게 표현되어 안정감이 있어 보이고 양무릎 사이에서 부채골 모양으로 퍼진 옷주름의 표현은 형식화되었습니다.

얼굴, 목, 손, 발 등이 도금되었으며 그밖의 부분은 호분을 입혔습니다.
 

내부는 정자의 가구수법과 유사하며 불전의 가구로서는 특이한 예입니다.
  

 

 

 

 

북지장사의 위치는 백안동에서 동화사쪽으로 1.5km가량을 올라오다 오른쪽으로 난 마을(도학동) 안 길을 따라 다시 2.5km 들어간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북지장사(北地藏寺) 삼층석탑(三層石塔)

 

이탑은 동서 쌍탑의 형식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지장사가 신라시대에 유행했던 쌍탑식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서 두 탑이 동일한 수법이지만, 규모는 동탑이 조금 큽니다.


탑의 구조를 보면 높이 380cm로 2중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올리고 상층 옥개석 위의 결실된 상륜부에는 다른 재질의 돌을 올리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이 탑은 하층 기단부에 우주와 탱주를 새기고 갑석에는 괴임대를 마련하여 상층기단을 받치고 있습니다.

상층 기단의 면석은 양쪽에 우주와 가운데에 탱주를 모각했으며, 갑석은 아랫부분에 부연과 그 위에 괴임대를 만들어 초층탑신을 받치고 있습니다.

탑신부는 옥개석과 탑신석이 각기 하나의 돌이며, 각 층의 탑신에는 양쪽에 우주를 새겨 두었으며, 상층으로 가면서 크기가 급격히 체감되고 있습니다.

옥개석은 아래부분의 받침이 4단씩이고 위에는 괴임이 2단입니다.

그리고 낙수면의 경사가 급격하여 경쾌한 느낌을 보이며 끝부분의 반전이 매우 탄력적입니다.

1981년 해체 복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