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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화계사(華溪寺)

여행자솔향 2014. 1. 28. 14:00

 

 

삼각산 화계사(華溪寺)

 

 

 

화계사는 백운봉(白雲峰 836.5m), 인수봉(人壽峰 810.5m), 만경봉(萬鏡峰 787.0m)으로

북한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삼각산(三角山)의 동남쪽으로 칼바위 능선을 지나 흘러내린 끝자락에 화계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화계사 일주문 편액

 

 

 

 

 

화계사 일주문 오른 편으로 새로 신축한 백상원 건물이 있으며, 바로 위에 화계사 사적비가 보입니다.

 

 

 

계곡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오른편으로 숭산행원 대선사의 사리탑과 부도전이 위치하고 절 입구에 국제선원 건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도전

 

 

 

 

 

 

 

 고봉선사의 추모탑

 

고봉선사는 만공선사의 법을 숭산선사에게 전한 고승으로, 1961년에 이곳에서 입적하였으니 세속의 나이로는 72세이고, 법랍은 51세입니다.

고봉선사는 1890년에 박팽년의 후손으로 대구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린 시절에 유학을 배웠고, 출가는 1911년에 상주에 있는 남장사로 하였습니다.

1915년에 팔공산 파계사에서 도를 깨달았으며, 1922년에 덕숭산 정혜사에서 만공선사로부터 도(道)를 인가 받았고 이후 정혜사와 서봉암 조실을 역임하였습니다.

 

 

한국전쟁 후에는 달마회의 전신인 거사림을 조직해 거사불교를 발전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봉암사와 은적암. 봉곡사. 복전암. 미타사 등에 머무르며 후학을 지도하였으며, 법어집『겁외가劫外歌』를 남겼다.

 

전법게는
‘ 일체 법은 나지 않고 일체 법은 멸하지도 않는다.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법, 이것을 이름 하여 바라밀이라 한다.’ 입니
다.

유일한 승가의 제자가 숭산선사입니다.

추모탑에는 보조 지눌스님의 법어 중『단지불회 시즉견성 但止不會 是卽見性』“단지 알지 못할 줄 알면 이것이 곧 견성이라.”고 적었습니다.

이것은 숭산 큰스님의 “오직 모를 뿐!” 과 “오직 할 뿐!”으로 발전하여 전 세계 사람들에게

“세계일화”와 더불어 조계종의 종지를 분명하게 전하고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고봉선사의 추모탑에는 선사의 유언에 따라 사리 모시지 않았습니다.

 

 

 

 

숭산 행원선사 사리탑

 

 

 기단 8각형은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합니다.

팔정도는 사성제 가운데 마지막의 도제에서 가르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취해야 할 8가지 바른 자세' 를 말합니다.
 

    1. 정견 (正見) : 바르게 보기
     2. 정사(유)(正思(惟)) : 바르게 생각하기
     3. 정어(正語) : 바르게 말하기
     4. 정업 (正業) : 바르게 행동하기
     5. 정명 (正命) : 바르게 생명을 유지하기
     6. 정근, 정정진(正勤, 正精進 ) : 바르게 정진(노력)하기
     7. 정념 (正念) : 바르게 기억하고 바르게 생각하기
     8. 정정 (正定) : 바르게 삼매(집중)하기

 

 

     육각형 = 육바라밀 ;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바라밀
     삼층 = 삼법인(제행무상, 제법무아, 적정열반)
                삼보(불,법,승). 삼재(천,지,인). 삼신(체體,상相,용用)
     둥근 원 4개 = 사홍서원
     연화좌대 ; 연꽃, 법화세계, 불보살을 모심
     일원상 ; 공안의 세계, 진리의 세계, 우주법계의 세계

 

 

 

 

 

 

 

 

 

 

 

 

국제선원

 

국제선원은 외국의 수행자들을 위한 수행공간으로 일주문을 지나 화계사 절 입구 오른편에 위치한 옛 백상원 건물입니다.
국제선원은 외국인 수행자들이 불도를 닦는 곳으로 1984년에 보화루에 처음 개원하였습니다.

1991년에 대적광전이 세워지자 1992년에 재개원을 하고 이곳에서 매년 여름과 겨울 안거를 실시하는데 꽤 많은 외국인들과 국내 불자들이 참여한다.

안거에 들 정도면 단순한 신자 차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승여가 됨을 의미하고 그동안 수많은 외국인이 이곳을 거쳐 승려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중 일반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사람은 현정사 주지를 지낸 현각스님입니다.

그는 미국인으로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 등지에서 신학을 공부한 엘리트였습니다.

우연히 숭산스님의 불법을 듣고 불교도가 되었으며, 마침내 승려가 되어 국내사찰의 주지와 이곳 화계사 국제선원의 선원장을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불교에 입문 하게 된 동기를 책으로 펴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텔레비전 방송에도 출연을 하였습니다.

이밖에도 계룡산 무상사 조실인 대봉스님과 주지 대진스님, 전 주지 오진스님 등 화계사 국제선원 출신인 대표적인 외국인 스님입니다.

  

 

 

숭산 스님이 세운 해외 선원은 30개국에 120여 곳이 넘습니다.

미국에 처음 세워진 ‘프로비던스 선원’에서는 1982년에 세계의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세계평화회의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숭산 스님의 해외포교가 널리 알려지면서 공부하러 오는 외국인 스님이 부적 늘어나 2000년 계룡산 무상사에 제 2의 국제선원을 개원하였습니다.

현재 화계사 국제선원에서는 매년 여름과 겨울 안거 이외에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요영어법회’와 ‘템플스테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화계사는 왕실에서 시주하여 중창하고 삼창한 사찰로서 여느 절과는 다른 가람 배치를 이룹니다.

  

 

 

특히 보화루는 요사가 주불전인 대웅전 앞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건물은 일반 살림집의 편의를 갖춘 곳으로 왕실 가족이 절에 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배려한 건물입니다.

 

 

 

절에 들어서면 하늘로 비상할 듯한 범종각과 마주하고, 왼편으로 대적광전이 웅장하게 서있습니다.

  

 

 

 대적광전의 뒤쪽이 이 절의 중심구역으로 보화루를 지나 대웅전은 화계사의 가장 중심을 이루며, 명부전과 천불오백성전이 대웅전 좌우에 있습니다.

  

 

 

천불오백성전 뒤쪽으로 삼성각이, 명부전 뒤편에 큰 스님이 기거하시는 조실당이 있고, 뒤편 요사에는 스님들의 생활하고 있습니다.

 

 

 

대적광전 1층에 식당과 국제선원 사무실이 위치하며, 앞마당에는 느티나무 3그루가 450여년의 세월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느티나무 아래 열린 마루가 있어 북한산 둘레길을 지나는 등산객들이 땀을 식히며 쉬었다 가곤 합니다.

 

 

 

 

 

 

 

 

 

 

 

 

 

 

 

 

 

 

 

 

 

 

 

 

 

 

 

 

 

조실당 앞뜰

 

 

 

 

 

 

 

 

조실당

 

조실당은 사찰의 조실스님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조실스님은 선종사찰에서 참선을 지도하시는 스님 중 가장 큰 어른을 말합니다.

화계사에는 고봉선사와 덕산선사가 조실을 지내셨고, 얼마 전까지 숭산 대선사께서 화계사 조실로 거쳐 하셨던 곳이 바로 이 조실당입니다.

지금은 덕숭문중 수덕사 방장이신 설정 큰스님이 화계사 조실을 겸하고 계시며, 화계사에 머무실 때 거쳐하시는 방으로 사용합니다.

주로 제자를 지도하거나 재가자들을 지도할 때 사용하기도 하고 손님을 맞아 차방으로도 이용합니다.
조실당은 2009년 출입구의 방향을 남향에서 동향으로 바꾸고 담장을 이쁘고 새롭게 꾸몄습니다,

봄이면 조실당 담장 안에 핀 홍목련의 자태가 우아하여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합니다.

 

 

 

보화루는 큰 방과 종무소, 그리고 다실로 사용하고 있는데 앞에 보이는곳은 종무소입니다.

 

 

 

 

 

 

 

조실당

 

 

 

명부전

 

명부전은 저승의 명부를 상징하는 불전을 말합니다.

죽은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원해 주고자 대원력을 세우신 보살로 알려진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곳이며,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저승의 심판관인 시왕을 모신 곳이라고 하여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부릅니다.

  

 

 

화계사 대웅전

 

화계사 중심 법당으로 정면3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현재의 대웅전 건물은 1870에 용선(龍船)과 초암선사가 흥선대원군의 시주를 받아 지은 것입니다.

그때에 지어진 것이 현재의 대웅전과 큰방(보화루)입니다.

당대를 호령하던 흥선대원군이 시주자이므로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1870년에 환공야조(幻空冶兆)가 지은 <화계사대웅보전중건기문>에 의하면 석수 30명 목공 100명이 달려 들어 불과 수개월 만에 완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웅전은 제법 높은 단 위에 세워져 있어 앞마당에서 올려다보면 지붕의 양쪽이 마치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펼친 듯 활력이 있습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고 있는 공포는 장식품으로도 손색이 없고 특히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설치하였는데 이렇게 공포를 많이 꾸며놓은 건축양식을 다포계양식이라고 합니다.

  

 

 

문미에는 대웅전 현판이 걸려 있는데  현판 글씨는 근세의 명필인 몽인 정학교가 쓴 글씨입니다.

대웅전 좌우측 벽에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표현한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정면 문 하단에는 연꽃문양이 그려져 있으며,

조선 후기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이 대웅전은 건물 전체가 1986년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6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전각 내부를 들여다보면 본존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이 삼존불은 근래에 조성된 것입니다.

뒤에 있는 후불탱화는 1875년에 화산스님이 조성한 것으로, 주불은 석가모니불이 아니고 아미타불입니다.

아미타불 주변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 지장보살 등과 사천왕, 십대제자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대웅전 왼쪽에는 본래 관음전이 있었는데, 1974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관음전 역시 창건 초기부터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단지 관음전에는 자수관음상이라는 특이한 유물이 전해져오는데. 이 자수관음상은 1875년에 왕실에서 내린 것으로,

이 상을 봉안하기 위해 1876년에 초암스님이 관음전을 중수하였다고 전해옵니다.

 

 

 

천불오백성전

 

대웅전의 동남쪽에 자리 잡은 천불오백성전(千佛五百聖殿)은 오백 나한을 모신 전각입니다.

건물 자체가 높은 단 위에 설치된 데다가 내부에 많은 나한상(像)을 봉안하고 있어 건물 높이가 상당합니다.

1964년에 조성된 전각으로 내부에 봉안된 오백나한상은 최기남이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는 1915년 관직에서 물러나 금강산에 들어가 십팔 나한상과 천불상, 사천왕상 등의 조각에 열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여주 신륵사에 자신이 조성한 조각상등을 봉안했다가 이후 화계사로 옮겨와 최기남의 가족이 천불오백성전을 짓고 모시게 된 것입니다.

나한(羅漢)은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으므로 부처나 보살 못지않게 공양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나한을 모신 건물에는 흔히 ‘오백나한전’, ‘응진전’이라는 이름이 붙는데, 이곳만은 특이하게 천불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법당에 불상이 천 개 모셔져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오백나한상과 관음보살상만 모셔져 있습니다.

건물 이름에 천불이 붙어 있는 것은 천불전과 나한전을 겸한다는 의미입니다.

 

 

 

 

 

대적광전

 

 

 

보화루(寶華樓)

 

 

 

천불오백성전

 

 

 

 

천불오백성전

 

오백 나한은 경전에 많이 등장합니다.

석가모니가 중인도 교살라국 사위성에서 오백나한을 위해 설법을 했다고 하고, 매달 15일 마다 오백나한들을 위한 계를 설하였다고도 합니다.

또 석가모니가 열반에 드신 후 중인도 마가다국 칠엽굴에서 오백 나한이 모여 불전을 편찬하였고,

석가모니 사후 600년이 지난 뒤 인도 서북부의 가습미라에서 열린 제 4결집에 모인 비구의 수가 500이라 오백 나한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처럼 나한은 석가모니 생존시에 따르던 500명의 제자를 뜻하기도 하고, 열반하신 뒤에 여러 가지 중요한 일에 모여들었던 500명의 나한이나 비구를 뜻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들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 특별한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는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조성된 오백 나한의 모습이 다 다르다는 것과 우리 인간들의 모습과 닮아 있고 해학적인 모습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백나한상 중에는 자신이 아는 사람의 얼굴을 하나쯤은 찾을 수 있다고 전해집니다.

 

 

 

삼성각

 

불교의 여러 신(神)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만 믿어 오는 신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산신과 칠성신, 그리고 독성신입니다.

이 세 신은 본래 별도의 건물에 모시는데, 산신은 산신각에, 칠성은 칠성각에, 독성은 독성각에 각각 모십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세신을 한꺼번에 모시고 건물 이름도 삼성각이라고 부룹니다.

 

 

 

 

 

천불오백성전

 

 

 

천불오백성전 내부

 

 

 

대웅전

 

 

 

삼성각

 

본래 화계사에는 산신각이 있었는데, 1885년에 금산(錦山)스님이 중수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 산신각이 너무 낡아서 1975년에 진암(眞菴)스님이 고쳐 지은 것이 바로 현재의 삼성각입니다.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기와는 동기와를 얹었습니다.

 

 

 

삼성각

 

칠성신은 인간의 수명장수와 재물을 관장하는 신을 말합니다.
칠성은 본래 도교에서 신앙하던 것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기우(祈雨)·장수·재물을 비는 민간신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칠성신에 대한 제사는 조정과 민간에서 계속되었으며, 이 신앙이 불교에 수용되어 사찰 안에 칠성각을 짓고 칠성신을 모시게 되었다.

칠성각은 조선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해 지금도 대부분의 사찰에 두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한 경우이다.

   

 

 

삼성각

 

칠성각에는 칠여래(七如來)와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을 탱화로 그려 봉안하고 있습니다.

독성은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깨달아 성인이 된 나반존자를 가리킵니다.

   

 

 

삼성각 내부

 

내부에는 1973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독성탱화, 산신탱화가 봉안되어 있고, 외부 벽화는 마음을 찾아가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산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속 신으로 나이 든 도사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호랑이와 동자를 거느립니다.

 

 

 

삼성각

 

희고 긴 눈썹을 가진 도인으로 오른 손에는 석장을, 왼손에는 염주 또는 불로초를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명부전


화계사 명부전은 명부(冥府)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꾸며놓은 전각입니다.

명부란 지옥을 뜻하는데 지옥의 모습을 그대로 꾸며 놓은 곳은 아니고, 죄인들을 심판하는 법정과 비슷합니다.

한가운데에 지장보살이 판사처럼 앉아있고 주변에는 시왕들이 검사처럼 날카로운 눈매로 아래를 굽어보고 있습니다.

지장보살을 돕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시왕을 돕는 동자, 판관과 녹사, 신장 등이 실내 앞면을 가득 메웁니다.

한쪽에는 생전에 저지른 죄를 비춰볼 수 있는 업경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업경대로 죽은 사람의 죄를 비춰보고 시왕들이 문초를 하며,

그 결과에 따라 극락이든 지옥이든 어디론가 망자를 보내는 곳입니다.

망자는 죽은지 49일째가 되는 날에 어디론가 가게 되는 까닭에 후손들은 이날 특별히 정성을 다해 불공을 올립니다.

죽은 이가 좀 더 좋은 곳으로 갈수 있도록 비는 의식을 49재라 합니다.

명부전은 바로 49재를 치르는 곳입니다.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조상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며 49재를 지내곤 하는데,

이것은 우리 민족이 효를 인간의 가장 중요한 도리로 여기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어느 절이든 명부전은 쉽게 발견할 수 있은 전각입니다.

 

 

 

명부전 내부

 

화계사 명부전인 현재의 건물은 1878년 새로 지은 것입니다.

당시 화계사는 왕실의 후원을 받던 절로서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지장보살과 시왕상을 옮겨 모시라는 명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황해도 배천의 강서사에 있던 지장보살과 시왕상이 선정되어 이곳 화계사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 지장보살과 시왕상을 봉안하기 위하여 초암스님이 조대비(趙大妃)의 시주를 받아 명부전을 건립하게 된 것입니다.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2001년에 기와를 바꿔 얹고 벽도 채색해 새 건물 같습니다.

현판과 주련은 흥선대원군의 친필 그대로이고, 추사 김정희의 제자답게 추사체의 특징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내부역시 2001년에 새로 꾸며 지장보살상은 물론 각종 시왕상, 동자상등이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장보살의 후불탱화는 1878년에 조성된 그대로입니다.

최근 개금불사를 위해 지장보살의 복장을 열어보니 1649년에 강서사에서 제작했다는 발원문이 나와 조성시기가 밝혀졌습니다.

발원문과 함께 여러 가지 책의 불경과 불사리도 나왔습니다.

지장보살상은 전체적으로 강건한 기상이 엿보입니다.

얼굴은 둥그렇지만 눈매가 길고 콧마루가 우뚝하며, 굳게 다문 입은 용맹스러움이 배어 있습니다.

설법인을 짓고 잇는 손매도 탐스럽고 탄력이 있으며 어께선도 부드러우며 풍부합니다.

무릎은 전후좌우의 길이와 폭이 알맞은 비래를 갖추면서 넉넉한 두께를 유지하여 안정감을 줍니다.

불의는 상당히 두껍게 표현하여 매우 사실적입니다.

좌우에 시립해 있는 도명존자상과 무독귀왕상은 물론 시왕. 판관. 동자. 사자. 수문장상도 모두 지장보살과 같은 양식기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판관의 사모나 시왕의 의관 또한 이 시대의 의제(衣制)를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사실적입니다.

이렇듯 지장보살상과 시왕상은 당시를 대표할 수 있는 미술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복장 유물까지 온전하게 나와 불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대웅전 앞과 명부전 앞에는 놋 항아리(청동)가 있는데, 이것은 홍대비(1904)가 내린 놋물드므(유수옹) 1벌입니다.

전각이 나무로 지어져 불나면 끝장이라 소방용으로 놓아 둔 것입니다.

이러한 놋항아리 물드므는 창덕궁의 인정전(仁政殿, 1804), 선정전(宣政殿, 1647), 대조전(大造殿, 1888) 것과 같아서 눈뜨게 합니다

 

 

 

보화루(寶華樓)

 

 

 

 

 

 

 

 

 

범종각

 

범종각에는 범종(대종), 법고, 운판, 목어가 천장에 걸려있는데 이 네 가지를 보통 불구사물이라고 부릅니다.

사찰에서 치르는 의식을 알리거나 공양 또는 함께 일할 때 군중을 모으기 위해 사용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다 특별한 의미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범종”은 땅 속, 특히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위하여 치고 “법고”는 가축과 짐승들을 위하여 칩니다.

그리고 “목어”는 수중생물, “운판”은 날아다니는 날짐승들을 위하여 치는데 불구사물을 모두 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범음을 들려주어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세계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대적광전

 

대적광전은 화계사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건물입니다.
1991년 정수스님이 조성한 대적광전은 정면7칸, 측면4칸, 4층의 건물입니다.

근래에 들어서 절에서도 복합건물을 세우는 경우가 흔한데, 이 건물 역시 여러 가지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1층은 식당, 2층은 강의실(제일선원)과 요사, 3층은 법당으로 사용하며 4층은 국제선원이 사용하다가 지금은 ‘일요영어법회’와 ‘템플스테이’ 장소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3층에 법당은 그 규모가 수백 명이 한꺼번에 대중법회와 불공을 드릴 수 있을 정도로 내부가 넓습니다.

매주 일요일 오전11시에는 이 대적광전에서 일요가족법회를 열고 대덕스님들을 모시고 법회를 엽니다.

이곳에서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철야 삼천배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대적광전 내부에는 중앙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 좌우측에 원만보신 노사나부처님과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부처님이 삼신불을 이루고 있어 화계사가 선종 사찰임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을 모셨습니다.

 

건물 규모가 워낙 크고 법당 내부 또한 넓어 이 전각이 주 전각처럼 느껴지지만 여러 가지 기능을 담기 위하여 대형으로 지은 것일 뿐이며 주 전각은 대웅전입니다.

흔히, 사찰에서 대적광전이라고 하면 바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건물임을 의미하는데 비로나자부처님은 “빛”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비로자나불은 연화장(蓮華藏) 세계에 있는 부처님으로 그 세계가 장엄하고 진리의 빛이 가득한 대적정의 세계이므로 전각 이름을 대적광전이라 부룹니다.

그러나 비로자나불만 모시면 비로전 또는 적광전이라 부릅니다.

 

 

 

 

 

 

 

보화루(寶華樓)

 

대웅전 앞마당에 공자형(工字形)의 큰 건물이 있는데 이것이 보화루(寶華樓)입니다.
이 건물의 마루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면 불상이 보이는데 곧 마루에서 바로 예불을 드릴 수 있도록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건물은 서울 근교의 왕실 원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 보통 ‘대방(大房)’ 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큰방’ 이라는 뜻입니다.

보화루에는 군데군데 현판이 붙어 있는데 ‘보화루’라는 현판은 추사의 수제자 위당(威堂) 신관호(申觀浩)가 쓴 것입니다.

그리고 ‘화계사’ 라는 현판은 1866년에 흥선대원군이 시주하여 대웅전을 중수할 때 쓴 글씨입니다.

흥선대원군이 쓴 현판에는 좌측에 두인과 우측에 ‘대원군장(大院君章)’, ‘석파(石坡)’라는 방인의 도서 2과가 있는데,

글씨는 예서와 해서를 혼융하였고 질박한 느낌을 줍니다.

 

 

 

본래 보화루는 대적광전에서 볼 때 단의 높이가 있어 루(樓)의 성격을 가졌으나 대적광전을 지으면서 계단을 없애고 평평하게 하였습니다.

1933년에는 한글학회의 주관으로 이희승, 최현배 등 국문학자 9인이 화계사 보화루에 기거하면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집필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큰방에서는 법회 이외에도 불교대학 강의, 그리고 각 신행단체의 회의장소로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보화루에는 관음전을 대신하는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하고 후불탱화로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좌우에 문수, 보현보살, 사천왕, 10대 제자를 봉안 하였습니다.

보화루는 2010년 전면 개보수를 하여 새롭게 단장 하였습니다.

 

 

 

 

 

 

 

 

 

범종각

 

범종각 동종은 천장에 걸려있는 조그마한 종입니다.

크기는 작지만 3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유물입니다.

본래 경북 희방사에 있던 종으로 1898년에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종에 새겨진 명문에 따르면 1683년에 사인 스님에 의해 제작된 조선시대 종이라고 합니다.

무게는 300근에 달하며, 2000년 2월15일에 보물 제11-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종은 종의 가장 윗부분인 용뉴에 쌍용(雙龍)을 배치해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상대에는 범자(梵字)를 2줄로 배치하여 장식하였고, 그 바로 아래에는 조선시대 후기 양식을 지닌 유곽이 있습니다.

유곽대는 도식화된 식물무늬로 채우고, 유곽 안에 있는 9개의 유두는 여섯 잎으로 된 꽃받침위에 둥근 꽃잎을 새겨 넣었습니다.

하단에는 가는 두 줄의 띠를 둘렀고, 띠 안에 연꽃을 새겨놓았습니다.

사실성과 화사함이 돋보이는 수작일 뿐 아니라 승려가 공명첩을 가지게 되었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알려주는 명문이 남아 있어, 종 연구와 더불어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고 합니다.

이 동종은 지금은 사용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대종을 조성하기 전까지는 이 동종을 아침저녁으로 쳤다고 합니다.

 

 

 

한참을 머물며 곳곳을 둘러 보았고 이제는 이곳을 뒤로하소 떠날때가 되었나 봅니다

 

 

 

무언가 아쉬움을 남기고 화계사를 멀리서 돌아 보았습니다.